2012년 01월 27일
PM 11:50
나는 왜 1월만 되면 아프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가. 감기가 떨어진지 일주일만에 또다시 감기라니 건강체라고 믿었던 내게 믿기지 않는 사건이다. 물론 이번 설에는 여러가지의 드라마틱한 사건이 있긴했다. 드라마나 영화의 뻔한 클리셰 중의 하나인 '죽음과 탄생은 결국 같은 이치'라는 것을 몸소 느꼈던 며칠이랄까. 비교적 먼 일인 부음에는 가지 않았고, 갑작스러웠지만 가까운 탄생에는 기꺼이 달려갔다. 이틀간의 산고 끝에 제왕절개로 태어난 나의 첫 시조카 음율군. 조금 엉뚱한 생각인지 모르겠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 것'인 조카의 모습에 온몸이 찌릿찌릿해졌다. 누군가가 태어날 때마다 임신과 출산은 대단하고 신비로운 일이라고 느낀다. 나와야할 때를 알고 기특하게 문을 두드린 아기도 대단하고, 아기가 잘 나올 수 있도록 모든 힘과 에너지를 쏟아붓는 엄마도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9개월여간의 정성과 수고스러움은 말할 것도 없다.
먼 훗날이라고 가정하고 있지만 여하튼 '가깝지않은 미래에 엄마가 되었을 때' 엄마로서의 삶 역시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사람이 되고싶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들이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한 점의 후회도 없이. 너무 강한 어조인지 모르겠는데 적어도 가지못한 길에 대해 한탄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처럼만에 2인용 책상에 1인분의 자리를 차지하고 뚝심있게 들어앉았지만 감기 탓인지 미열 탓인지 춥고 어지러웠다. 게다가 우연히 바라본 방의 천장 모서리는 윗집 보일러에서 새는 물이 뚝뚝 떨어져 벽지를 까맣게 물들이고 있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당장에 집주인을 부르고, 집주인은 수리공들을 불러들였다.'이봐요. 화장실을 정상적으로 쓰게된지 이틀만에 방에서 물이 떨어지다니요!' 사실 이렇게 따지고 말할 힘도 없어서 마음속으로만 속삭였다. M이 적당한 예의를 갖추면서 그들에게 신경질을 내는 동안 나는 따뜻한 보리차를 주전자 가득 끓여 책상 앞에 다시 앉았다. 그래서 일을 했느냐하면 그것은 아니고 1인용 작업 스탠드를 열심히 골랐다. 비싸고 근사하고 멋진 것 말고 오로지 작업을 위한 이케아 스탠드와 도큐멘터리 파일함 그리고 물건을 대충 쑤셔박아도 좋을 라탄바구니 하나를 담아 결제까지 신속하게 마쳤다. 천장이 새는 것은 결국은 고쳐질 일이고, 싱크대의 합판이 맞지 않는 것도 고쳐질 일이다. 다만 수리에 시간이 걸리거나 번복되면서 이 집에 사는 우리에게 마이너스 에너지를 주는 것인데 그런 사소한 사건들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 M은 대단한 자의식이라고 껄껄댔지만 내게는 중요하고도 심각한 일이다. 멋 없는 스탠드가 도착하면 멋부리지 말고 물 떨어지는 천장은 떨어지라고 내버려두고 코뿔소처럼 진득히 책상에 앉아 나는 나만의 길을 가야지.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은 오로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감기와 함께 1월이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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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12/01/27 00:29 | 되도록 짧게 | 트랙백 | 덧글(14)



